공감과 배려-내가 할 수 있는 두 번째 사랑



40대 후반의 J 변호사는 어느 날 지인의 장례식장에 문상을 마치고 나오다가 다른 방 빈소에 유치원생 같은 아이의 영정사진을 보았다. 조문객은 아무도 없었고 아이의 부모 같은 젊은 부부만 상복을 입은 두 개의 섬처럼 적막하게 앉아 있었다. J변호사는 조용히 들어가 아이의 영정에 분향하고 절을 한 뒤 상주인 부모에게 말했다. “지나다가 모르지만 너무 가슴 아프고 안타까워 아이의 명복이라도 빌어주려고 들어왔습니다.” 50대 중반의 K 프리랜서는 어느 날 자기 아내가 갑자기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렸다. 아내의 친구가 항암치료 때문에 삭발한 다음 창피해서 외출을 못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자 ‘머리 깎은 한 사람은 쳐다보지만 두 사람은 안 쳐다본다’며 자신도 긴 머리카락을 친구처럼 빡빡 깎아버린 것이다. 그 뒤로 시장이든 백화점이든 늘 함께 다녔다. 비구니가 되는 줄 알고 매일 좌불안석이었던 K 프리랜서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50대 중반의 중견 출판사 H 대표는 어느 날 골목에서 남루한 행색의 ‘걸인’ 같은 사내를 보고 지폐를 꺼내 적선하려다가 멈칫했다. 돈을 불쑥 내미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사내의 등을 향해 말했다. "아저씨, 이거 흘리고 가셨어요."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주는 척하며 적선했다. 마치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한 장면처럼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이 세 사람의 따뜻한 일화는 우리 주변에 흔할 것 같으면서도 흔하지 않은 얘기들이다. 생면부지의 빈소에 분향하고, 헌화했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본 적 없고, 암투병중인 친구를 위해 같이 삭발했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본 적 없고, 적선은 하되 ‘걸인’을 돈의 주인으로 만들어 명분을 세워주고 자존심을 배려하는 방법까지 고민했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본 적 없다. 요즘처럼 ‘공감’과 ‘배려’가 크게 강조되는 시대도 드물다. 그러나 대부분 먼발치에서 잠시 눈물짓고 잠시 슬퍼하는 것으로 공감과 배려를 ‘소비’해 버린다.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커피 브랜드를 마시는 것과 같다. 공감과 배려는 브랜드가 아니다. 소비도 아니다. 값싼 동정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작은 감동의 생산이고 그 생산이 모여 감동의 연대를 이룬다. 아이의 엄마는 낯선 조문객 하나 만으로도 세상이 따뜻했을 것이고, 암투병 환자는 삭발한 친구 하나 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나았을 것이고, ‘걸인’은 일부러 자신의 ‘떨어진 자존감’을 세워주는 것 하나만으로도 긴 터널 같은 일상에 잠시나마 빛 같은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가슴에 사랑의 화상을 입는 것은 영화 속의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라 이처럼 숨어있는 꽃들의 작은 감동들 때문이다. 이 세 분의 인품과 마음이 진짜 생산적인 공감과 배려의 씨앗이다. 그 씨앗이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거둔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온다. * 인문교양 월간지 <유레카> '생각의 틈' 연재(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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